내 방구같은 만화 (기묘나, 호랑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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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구같은 만화>에서 먼저인 것은 방구일까 방일까?

어쩌면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질문인 것 같다. 방을 찾았기에 편히 방구를 뀌는 것이고 방구를 편히 뀌기 위해 방을 찾아나섰다. 이때 ‘방구’는 근처에 있는 타인의 코를 괴롭게 하는 그 방구일수도, 방구같은 만화일 수도 있겠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기묘나(작가 본인)가 온라인으로 방과 알바를 구하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피터팬 요정의 축복을 받고 천국에서 내 자리 하나 구하려 눈이 빨개지도록 스크린을 노려보던 주인공은 결국 ‘비구니가 될까’ 고민하기에 이른다. 웃음이 나오는데 동시에 너무 레알이다. 하루의 90% 이상을 먹고 사는 고민에 쏟는지라  스스로를 ‘작업자’라 부르길 망설이는 작가. 어쩌면 기묘나라는 사람은 ‘작업하는 사람이라’ 만화를 그리기도 하지만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도 만화를 필요로 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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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답답할 때마다 종이 위에 휘갈기고 나면 속이 좀 편해져요. 꼭 방구를 뀌는 것 같아요.” (34쪽)

나 혼자인 방, 마음이 출렁이는 방. 이곳에서 주인공은 만화를 그린다. “말로 표현도 안되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뒤섞인 내 얘기를 냅다 풀어놓고 싶을 때… 잡히지 않는 생각들이 종이 위에 옮겨지는 게 후련하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15쪽)

말하기 쑥스럽지만 나는 요즘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다. 매년 ‘올해는 일기를 쓸테다’ 결심하는데 솔직히 글을 쓰는 건 너무 귀찮다. 그런데 최근에 손바닥 크기의 공책과 적당한 굵기의 펜을 만났고, 애써 말로 옮기기 힘든 감정이나 장면들을 선으로 옮기다 보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단어 선택을 하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게 마음 편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방구같은 만화’라는 신선한 비유가 즉각적으로 와닿았던 것도 그림일기를 시작하면서 그 즉흥성(?) 속의 후련함을 조금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다.

방구는 사람이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뀌고 싶을 때 뀌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조용히 묻히고 싶었는데 뽝 터져 사람을 난처하게 한다. 그림일기를 그리다보면 의도치 않은 선이 그어져서 인물의 표정이나 심지어는 정체가 바뀌어버릴 때가 있다. 이럴때는 내가 싸지른 선을 안고 내가 그리고자 했던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 나의 그림일기에는 독자가 없어서 부담이 적다. 기묘나 작가는 만화를 그릴 때 누군가를 독자로 상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눈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대화나 상담에 비해 그림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 대해 발화자가 갖는 의무감을 완화시킨 상태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을 재구성하는 장인 것 같다. 그래서 “말없는 스케치북”이 그리는 이를 고요 가까이에 데려다 주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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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가 혼자 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화로 써 내고 만다!” (86쪽)

작품 속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바라던 ‘나만의 방’을 찾아내고, 이사를 한다. 혼자 잘 사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릴 거라고 다짐하지만 밤에 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섭고, 방에 들어서서도 불을 켜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기 전까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팩트만 말하자면, <방구만화>는 20대 여자가 자취하는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혼자 사는 방’에서 주인공은 할머니가 보내준 밥솥으로 밥을 지으며 동생이 사둔 믹스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친구가 달아준 안전장치 덕분에 조금이나마 덜 불안할 수 있다. 태풍이 와서 혼자 자기 무서운 날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집에 초대한다. 방을 찾을 때도 이사할 때도 동료가, 친구가 돕고 응원했다.

 

독립은 뭘까

내가 좋아하는 영상작가 겸 시인 한나 낸팬스키Hannah Nanpansky는 “독립은 성공적인 의존관계들의 표면적 모습이다”라고 트윗했다. ‘독립’이란 개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기묘나 작가의 할머니도 ‘돈이 최우선이지 않던 시절에는 뭐든지 나눠 먹었다’고 말씀하시지 않나. 어떻게 생각해보면, 삶의 온갖 상황들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나 혼자서 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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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노 이미 난 여기서 이라고 있는데” (27쪽)

책 안에서 이야기의 배경이 뚜렷하게 밝혀지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부산말을 쓴다. 기묘나 작가의 이야기가 멀리서 바라봤을 때 ‘여느 자취생, 여느 청년 작가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한 사람의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 ‘부산말’이 큰 역할을 한다. 나는 책에서 또는 다른 매체에서 부산말을 ‘비표준’이라고 이름표 붙여지지 않은 ‘그냥 일상’으로 만난 적이 드물다. 서울에서 자라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는 나에게 ‘부산말’은 가깝게 느껴지기도 낯설기도 하다. 어떤 책을 읽을 때에는 주인공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겹쳐 읽을 수 있고, 많은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보이스오버 가능성’은 ‘감정이입 가능성’과는 별개인 것 같다. 기묘나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썼기 때문에, ‘이미 이라고 있으니까’ 독자도 마음을 내고 따라가게 되는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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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수백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겠지만, 어째 어째 잘 가고 싶다.” (44쪽)

하루의 90% 이상을 먹고 사는 고민에 쏟는지라 스스로를 ‘작가’라 부르길 망설이는 사람, 동네 전봇대에 붙여진 험악한 글귀에 심장이 벌떡이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마음이 언제 고요했는지 모르겠고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 드는 사람, 삶 속에서 남에게 끌려가는 느낌에 괴로워하지만 어쩌다 한 번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경험도 하는 사람 — 난 이런 사람의 이야기에 목마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지금 나에게 이렇게 필요한 줄도 몰랐다. 나를 지탱하는 이야기와 작가 중 하나로 <내 방구같은 만화>와 기묘나 작가가 다가온 거다.

기묘나 작가가 앞으로도 독자들과 기운을 주고 받는 관계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책에 등장하는 이 만화의 첫 독자들이 말했듯 나도 기묘나 작가의 만화를 볼 수 있어 기쁘고, 통쾌하기 때문이다. 나도 앞으로 수백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것이다. 그럴 때 <내 방구같은 만화>를 꺼내보면서, 울고 웃다가 어째어째 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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