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엔 베이커, 기쁨을 또렷이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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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Jake Cunningham

Interview by T. Cole Rachel | 2017. 2. 3 | “Julien Baker on learning to articulate joy”

 

지금 새로운 앨범을 만드는 중인가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그렇죠, 근데 전 어떤 방식으로든 늘 노래 작업을 하고 있어요. 노래를 쓰는 게 삶을 정리하는 방식이라면 작업을 안 하고 있을 수가 없죠.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감정이 작업에 녹아들어요. 2015년 말부터-그리고 그 해에 저에게 일어난 모든 삶의 변화를 기억하면서–저는 꽤 많이 썼어요. 어떤 잠재된 테마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때 “음, 이걸 쫓아가보자”라고 생각했죠. 저는 이제 다음 앨범을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구상 면에서 굉장히 잘 알게 됐어요. 제 생각에 그 앨범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좀 더 의도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드는 것 자체에서 그렇지 않더라도요. 소리 면에서는 전 앨범과 비슷할거에요, 그게 제가 노래를 쓰는 스타일이니까요.

제 생각에 노래를 쓸 때 찾아오는 고요함, 언제 멈춰서서 그냥 가만히 있을지를 아는 것이 노래를 쓰는 과정에서 저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충분하다는 걸 깨닫는 거요. 때로는 “와, 여기에 현악 사중주를 넣고 여기에는 관악단을 넣고, 이걸 오페라로 만들면 완전 근사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그 노래를 섬기는 일이 아니죠. 가사 면에서는,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게 그냥 토해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저 지금 되게 모범생 같은 말을 할 참이라서 미리 사과드려요. 제가 창의력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워즈워스가 한 말인데, 그 시인은 대략 이렇게 말해요. “시는 즉흥적으로 넘쳐흐른 감정을 고요함 속에 사유한 것이다.” 제 생각에 이 말이 제가 노래를 쓸 때 느끼는 양면을 정말 정확하게 표현해요, 특히 제 노래쓰기 방식에 있어서요. 일단, “감정이 생겼다” 라는 생각이 들면, 창고에 나가서 그 감정을 소리내어 토해내요. 이번 앨범 작업에서는 좀 더 정제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접지른 발목Sprained Ankle>은 정말, 정말 날것 그대로였어요. 날것이 항상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그 앨범과 그 노래에는 그런 방식이 맞았어요–이번에는 좀 더 시간을 들일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 앨범은 예고도 없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정말 놀라게 한 것 같아요. 이제 자신의 음악을 기다리고 있는 청중이 있다는 걸 알고 음악을 만드는 느낌은 어떤가요? 그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나요?

저는 예전에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은 말을 했었어요. <접지른 발목>을 저 스스로만을 위해 만들었다는 식의 말이요. 털어놓자면, 그 앨범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그 당시 제 삶에 일어난 일에 대응하는 기제로써, 도구로써 제가 만들었던, 제 경험에 기반한 앨범이에요. 그게 항상 제가 음악을 사용해온 방식이에요. 저는 펑크 밴드에서 노래를 쓰면서 자랐는데 밴드 멤버들과 주기적으로 나왔던 말이 “야, 이거 공연할 때 최고겠다!”였죠.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부르고 후렴 부분을 소리지르는 걸 상상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를 위해, 말해야 하니까 말하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말하는 거죠, 그 세상이 아주 작은 공동체, 그냥 지하 공연장에 모인 몇몇 사람들일 뿐이라도요.

이제 그 청중의 폭이 좀 더 넓어졌다는 걸 알고 있고, 그 사실에 대해 때때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가장 좋은 노래들은 그냥 그 노래가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둔 것들이에요. 릴케가 뭐라고 했었죠? 자신은 예술의 창작자가 아니라, 산파일 뿐이라고? 그게 제가 좋아하는 기분이에요. 제가 노래를 만드는 일에 다가가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대부분은 그냥 저에게 뭔가 힘든 일이 일어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냥 앉아서 제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 말하는 거에요. 저는 지난 1년간 <접지른 발목> 을 공연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납득하려고 노력해왔어요. 이제는 그 특정한 경험들에서 떠나왔으니까요. 그 감정들은 어쩌면 늘 존재하는 것이겠지만–삶에서는 언젠간 마음이 부서지는 경험이 있으니까요. 살다보면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고요. 하지만 그런 감정과 사건에 대해서 몇년이 지난 후에도 노래하고 있는 건 이상한 기분이에요. 라이브 공연을 할 때 시도하려는 것 중 하나가 그 낡은 감성을 새롭게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거에요.

그 감정들은 어쩌면 늘 존재하는 것이겠지만–삶에서는 언젠간 마음이 부서지는 경험이 있으니까요. 살다보면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고요. 하지만 그런 감정과 사건에 대해서 몇년이 지난 후에도 노래하고 있는 건 이상한 기분이에요.

“좋은 소식Good News”이라는 노래에 대해 항상 이야기를 하는데요. 제 노래를 듣는 사람들로부터 “그 노래가 절 위로해줬어요!”라는 말을 듣는데, 저는 무대 위에서 “나는 내가 하는 걸 다 망쳐”라고 소리지르고 있는 거에요. 그게 되게 신경쓰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지지하고 퍼트리고 싶은 건 그런 자기비하적인 말이나 사고방식이 아니에요. 하지만, 아무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척 하는 것도 거짓이죠, 왜냐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언제나 있고 그 감정은 진짜니까요. 희망을 꾸며내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내면에서 느끼는 것, 늘 좋지만은 않은 감정에 솔직한 노래들을 만드는 것. 그 균형이 있어요. 최근에 마침내 그 노래를 공연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와 일종의 양보를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이렇게 말해요. “이 노래는 제가 모든 걸 망쳤다고 생각했을 때에 대한 건데요, 이제는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오그라드는 말이죠. 저는 무대에서 이 말을 할 때 열에 아홉은 스스로 움찔하지만, 그게 진짜고 그 말을 진심으로 하는 거란 걸 증명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새로운 노래들–특히 1년 전에 끝난 관계에 대해서, 1년 전에 쓴 노래들을 라이브로 부르는 건 어떤 의미일지, 어떤 느낌일지에 대해 생각해야 했어요. 2017년에 나올 새 앨범의 테마에 적절하고, 당연히 저는 이제는 그 시기를 지나갔고 그 상대와도 이제 서로에게 우호적인 상태지만, 그래도 웃기는 거죠. 저는 정신건강을 둘러싸고 있는 낙인을 살피면서 감정에 대해 열린 상태에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시도해온 것 같아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음악 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약간, “이상하다”라고 말하기 싫지만, 그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전제를 두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약간 “이상한”사람들이고 어저면 그게 우리가 예술을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어요.

최근에 알랭 드 보통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이 제 삶을 바꿔놨어요. 보통은 이렇게 말해요 “예술은 사랑이 당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을 때 당신 곁에 있다.” 그걸 읽었을 때, “와, 맞아.”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그 정말 어두운 것들에 대해 솔직한 것, 예를 들어 “나는 실망스러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건 중요해요. 제가 자신을 검열하기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을 해요. 그게 제가 “기뻐하라Rejoice”를 전 앨범에 남겨둔 이유에요. 때로는 어떤 생각이나 느낌에 들어가 살아야 그것을 초월할 수 있어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가장 용기내서 드러내야 하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 특히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의 충동은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자신의 어두움을 기록하는 쪽인 같아요. 아름다운 슬픈 노래를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진 사람으로써, 어떻게 생각하세요?

데스캡포큐티Death Cab for Cutie의 벤 기버드Ben Gibbard에 대해 누군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그 사람은 행복해지고 나서 좋은 노래를 만들지 않았어.” 저는 “와, 그로테스크한 말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문화가 이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가요. 저는 모든 예술에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작품 안에 진정한 감정이 있는 한 예술의 형식의 질을 비판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실연과 관련된 온갖 종류의 상투적인 예술을 그저 그 작품의 주제 때문에 받아들이죠. 기쁨이 담긴 노래를 제대로 해내기는 훨씬 어려워요. 저는 행복에 대한 노래를 듣는 이들이 그 행복의 진위를 의심하기 때문에 비웃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있어요. 저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건 어렵고 어설프게 싶지 않아요. 이렇게 생각해요. “나에게는 기쁨이 있다.” 이 말 자체는 굉장히 복잡한 거에요. 하지만 기쁨을 표현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B-52s 같은 사람들의 노래를 생각하고 있어요. 알렉스 라히Alex Lahey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뮤지션이 있는데, 그 사람 노래의 후렴부는 그저 “밖에 나가서 오늘 밤 재미있게 보내자”에요. 쳇바퀴 돌리는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나가서 파티하자’는 노래를 패러디하고 있는 거죠. 그 비틀린 농담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정말 멋져요.

마치 공적인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게 자신의 행복에 대해 비꼬지 않으면서 정말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덜 부끄럽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정말 희한한 건, 저를 포함해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변 모든 것들의 고통을 뾰족하게 느끼고 있을 때 행복이란 예의 없음처럼 느껴진다는 거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저에게, 2016년은 배우는 해였어요,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저는 기쁨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어요–행복과 다른 의미에서의 기쁨이요. 왜냐면 행복은 일시적인 공간이고, 하나의 감정인데, 기쁨은, 제 생각에, 뭔가 다른 거에요. 마치 자기가 차용하기로 선택하는 성향같은 거요. 그리고 자신에게 기쁨을 허락해도 돼요. 저는 철학을 많이 읽는데, 그래서 늘 “나는 인간의 플라토닉 이상이 되어서 나의 존재에게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것을 하고 싶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쩌면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건, 슬픈 노래만 쓰지는 않는 것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기쁨을 표현하는 걸지도 몰라요. 아직은 어떻게 하는지를 배우고 있어요.

투어 중에 본회퍼Bonhoeffer의 윤리Ethics를 읽고 있다가 (저는 완전 너드니까요) “나는 절대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할거야.” 라고 말했어요. 그때 제 좋은 친구 중 한명이 “신이 기쁨을 미워한다고 생각해?” 라고 물어서 제가 “아니, 그렇진 않은 거 같은데. 신이 기쁨을 미워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라고 했어요. 그리고 친구가 했던 말이, “그러면, 행복할만한 일이 이것저것 있다면, 그걸 고통받는 모습이 아니라 희망의 이미지로 나타내는 게 어때? 왜냐면 희망이 없는데 무대에 올라가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없잖아. 무대에 올라가서 기쁨을 성취할 수 없는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지향점으로 이야기할 수 없잖아, 너 스스로가 기쁨이 없으면. 그러니까 자신이 기쁨을 느끼도록 허락해.” 때때로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해주면 자기가 완전 바보처럼 느껴질 때 있잖아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너무 5학년 교실에 달려있는 포스터문구같죠 –그냥 최선을 다하자! –그런데 그게 정말 최고의, 가장 깊은 충고인 것 같아요.

아직도 불안과 싸우고 있어요. 투어할 때 정말 오랫동안 공연하기 전 매번 공황발작이 있었어요. 공연하는 건 무섭고, 굉장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요. 제 머리 속에서요.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투어할 때, 마치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나는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정말 즐기고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기대된다는 사실을 그냥 소중히 여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긍정적인 존재일 수 있어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고 어두운 기분에 빠진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요. 저는 웃고 있고,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안아줄 수 있어요. 한 공연에서는, 노래를 시작하는데 무대 앞에 있는 한 소녀가 “이거 내 노래야!”라고 소리치는 거에요. 웃음이 났어요. 그런 말을 들어본 건 바에 있는 주크박스에서 누군가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말을 한 게 정말 좋았어요. 그때 되게 유치한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 이건 네 노래야.” 더 이상 제 것이 아니에요. 그때 말했어요. “맞아요, 당신 노래에요. 이건 당신을 위한 노래에요. 즐겨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은 굉장히 기뻐했어요. 제 노래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낀다거나 나에게 이런 건 과분하다고 느낀다거나 내가 이런 걸 얻을 맏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 대신에, 저는 그냥 행복해요. 제 일이 무대에 서서 수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이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란 게.

<접지른 발목>의 돌풍같은 성공 이후, 마침내 다시 집에 돌아와서 음악 작업을 하는 게 이상했나요?

제 가장 큰 두려움은 누군가 제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고 감사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놀라거든요. 저는 대체로 사람이 직업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대체로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에 비례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진짜 삶에서 유령이 아닐, 가족을 만나고 파트너를 볼보러 갈 시간이 필요해요. 외부로는 아무런 소식을 보내지 않으면서요.

저는 투어 중에 노래를 많이 써요. 그게 이상한데, 한때는 저는 투어 중에는 노래를 쓸 정신상태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투어하는 게 그냥 저의 보통이 되었고 저는 정말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적응했어요. 차에서 짧은 음성메모를 만들고 들어보고 걸어다니면서 가사를 써요. 집에 돌아와서는 스튜디오를 빌려서 데모를 많이 만들었죠. 스튜디오에서 거의 매일 12시간씩 보냈어요. 제 머리 밖에서 데모를 들어보는 게 저에게 정말 좋았어요. ‘새 노래들이 너무 다르면 어떡하지? 너무 비슷하면 어떡하지? 모두가 실망하면?’ 이런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기대의 무게가 ‘난 할 수 없을거야’라는 두려움을 가져오기 시작했어요. “다 쓰레기야, 모두 싫어할거야.”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녹음하기 시작하고 바뀌었죠.

제 친구 캘빈 라우버Calvin Lauber와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필로우토크Pillow Talk 라는 멤피스 출신 밴드의 멤버에요. 멤피스의 음악 씬에서 활동하고 있고 제가 13살 때부터 알던 사이인데, 밴드에서 연주하는 것 외에 녹음이랑 엔지니어링도 하는 사람이죠. 함께 녹음 작업하는 게 너무 편안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어요. “아, 맞아, 난 그냥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너무 좋아해, 실은 여기서 실험하고 이 노래의 형태를 잡아가면서 12시간 더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순간들이었어요. 제가 왜 이걸 하는지, 그 이유로 스스로를 돌아가게 하는. 스스로가 만드는 것, 그걸 만드는 과정의 기쁨에 다시 연결될 수 있어야 해요. 다른 일들에 치여서 그 기쁨에 집중하지 못하기가 쉽죠.

제 생각에 그냥 존재함으로써, ‘음울한 고통받는 아티스트’ 페르소나에 저항함으로써 늘 슬퍼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고 생각해요. 슬픔으로 정의되지 않아도 돼요.

저는 제가 멤피스로 돌아와서 음악을 만들 수 있을 만큼 편안함을 느낀다는 데에 너무 감사해요. 올해 초에 가족과 좀 더 가까이 있으려고 여기로 돌아왔어요. 전 이 도시를 사랑해요. 드레이크가 토론토를 사랑하는 수준으로 이 도시를 사랑해요. 여기 있는 느낌이 좋아요. 데모가 완성되고 다시 몇몇 노래를 들어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제 작업에 대해 과도하게 비판적인데,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그렇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게 내가 만든 것에 대해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자랑스럽고, 이 앨범의 서사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을 걸 말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서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도, 저는 제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에요. 너무 5학년 교실에 달려있는 포스터문구같죠 –그냥 최선을 다하자! –그런데 그게 정말 최고의, 가장 깊은 충고인 것 같아요.

당신의 음악의 성향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에게 ‘고통받는 아티스트’ 이미지를 덮어씌우나요? 그런 상황을 어떻게 피할 수 있나요?

무대에 설 때는, 서둘러 들어가서 바보같은 말을 하기 전에 좀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저는 바보같은 사람이기도 해요. 그리고, 추가적으로, 저는 로드Lorde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아니에요. 스타디움에서 공연하거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죠. 사람들이 제가 롤 모델이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수준에 있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제 노래 안에 있는 삶의 조각들을 확장시켜서 그것이 제 개인 전체를 나타낸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저의 또 다른 과제는 살아가는 줄리앙과 앨범의 줄리앙을 통합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방식은 무대에서 바보같고, 유치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거나 별볼일 없는 농담을 하는 걸 포함해요. 때로는 잘 넘어가지고, 때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반응이 없고 사람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감정적으로 너무 극단적이잖아!”하는 표정일 때도 있어요. 그러면 전 그냥 이상한 농담을 더 하는 대신에 노래를 하죠. 제 생각에 그냥 존재함으로써, ‘음울한 고통받는 아티스트’ 페르소나에 저항함으로써 늘 슬퍼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고 생각해요. 슬픔으로 정의되지 않아도 돼요. 노래를 쓰고, 공연할 때 이런 생각을 해요. 주문을 깨려고 한달까요, 무대 위에 누군가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그게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요.

때로는 특정 페르소나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지만, 현실적인 페르소나를 갖는 건 어떨까요?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어요, 여기 창틀에 기대서서 릴케 책을 들고 우울해보이기보다는요. 그건 제가 아니에요.

지금 저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 –

Marilyn Robinson의 소설 Gilead (언제나 지혜로운Lucy Dacus의 추천)

Beyza Ozer의 시 ( Hooligan Mag의 Morgan Martinez가 추천해줬어요, 모건 본인도 너무 멋진 사람이죠)

Kazuo Shiraga의 작품

밴드 PWR BTTMCamp Cope; 그들의 음악, 사회에 대한 의견, 예술을 통한 변화에 대한 헌신, 그냥 그 사람들 전체, 모두요.

Ariel Baldwin의 그림과 zine들. 멤피스 출신 시카고 주민이자 좋은 친구에요. 회복에 대한 정말 도전적이고 강렬한 작품을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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