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섹스”, 또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하게 되는 섹스

 

Ella Dawson, “Bad Sex,” or the sex we don’t want but have anyway (2017.12.09)

나쁜 섹스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 싶다.

“나쁜 섹스”라고 할 때 나는 즐겁지 않은 섹스, 어색했던 섹스, 또는 아팠던 섹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파트너와 섹스를 하는데 아직 그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갈망하고, 또는 본능적으로 짜증난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때의 섹스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발기가 지속되지 않거나 충분히 젖어있지 않거나 고양이가 계속 당신을 쳐다보고 있어서 굉장히 신경쓰일 때의 섹스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너무 실망스러워서 상대방을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되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나쁜 섹스”란, 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동의하여 하게 되는 섹스이다.

분명히 하자: 나쁜 섹스는 강간이 아니다. 나의 의지에 반하는 무언가를 하도록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남성인권 활동가들이나 벳시 드보스 같은 사람들이 늘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실은 그냥 전날 밤이 후회되는 것 뿐인데 강간이라고 허위 고발한다” 식의 쓰레기 같은 서사에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나쁜 섹스는 꼭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나쁜 섹스란, 그냥 하고 넘어가는 게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빼내는 것보다 쉬운 것 같아서 하기 싫지만 하게 되는 성적 경험이다.

젊은 여성들은 사실 하고 싶지 않은 섹스에 대해 수도 없이 “yes” 라고 말한다. 왜? 우리는 젊은 여성들에게 그들이 마음을 바꾸면 죄책감을 느끼도록 학습시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당신은 벌써 그의 집에 도착했고, 또는 벌써 침대 위에 있고, 또는 벌써 옷을 벗었고, 또는 벌써 yes라고 말했다. 정말로 이 상황에서 왜 멈추고 싶은지에 대한 어색한 대화를 하고 싶은가? 그게 그에게 상처를 준다면? 만약 그게 이 관계를 망친다면? 당신이 썅년처럼 보인다면?

(이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남성을 거부하기 전 해야만 하는 머릿속의 계산과정을 생각해보라. 그가 폭력적으로 나오면 어떻게 하지? 순응하지 않는 것이 당신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있다면, 나쁜 섹스는 성폭력이 될 수 있다.)

마주하기 힘든 진실은, 우리가 젊은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방에 아무도 없을 때에도 말이다. 까다롭게 굴지 마,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마, 곤란하게 만들지 마, 무례하게 굴지 마. 너의 불편함은 그의 편안함보다 덜 중요해. 너의 감정은 그의 감정보다 덜 유효하고, 덜 가치있어. 게다가 대부분의 10대 소녀들 –그리고 너무 많은 성인 여성들은 — 발기된 상태에서 사정하지 않으면 고환에 피가 몰려 고통스럽게 된다는 ‘blue balls’ 현상이 실제로 이슈이며 이미 발기된 남성을 거부하는 것은 그에게 신체적 고통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생이었을 때 경험한 섹스 중 얼마나 많은 경우가 딱히 섹스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몰라 했던 섹스인지 모르겠다. 때로는 상대에게 흥미를 잃었지만 그저 무례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상황을 따라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짝사랑으로부터 차인 뒤에 파티가 끝난 뒤 친구와 섹스를 했던 때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그의 기숙사 방으로 갔고 ‘no’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섹스를 했다. 나는 그 친구도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들은 ‘진짜 남자’라면 늘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고 믿도록 사회화되었다. 이날 밤의 섹스는 폭행은 아니었다. 그냥 형편없었다. 불편했고 굴욕적이었고 섹스가 끝난 이후에 나는 내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 과자 봉지에 보드카를 토했다. 우리 둘 중 아무도 “야,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라는 말을 하는 방법을 몰랐다. 우리의 우정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지만, 우리 둘 중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남성들과 소년들 또한 우리의 문화의 피해자이다.

나쁜 섹스는 침범당했다거나, 아프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남길 수 있다. 누구도 잘못했다고 할 사람은 없다. 아무도 참여를 강제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no’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언어가 없거나 그 말을 할 용기가 없었다. 섹스를 하기 전 유일한 장애물이 ‘yes’라는 말의 부재가 아니라 ’no’라는 단어의 등장 뿐일 때의 기분은 끔찍하다.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냥 털어버리려고 최선을 다하며, 심지어 다음날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을 때 농담거리로 삼을지도 모른다.

너무 자주, 나쁜 섹스는 젊은 여성들에게 보통이지 예외가 아니다.

보수파들은 나쁜 섹스가 사회적으로 섹스의 가치를 절하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결혼할 때까지가 아니라면 적어도 사랑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 주장에 강하게 반대한다. 나쁜 섹스는 사회적으로 즐거움, 욕망, 그리고 동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 데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미국에서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섹스를 어떻게 즐기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섹스에 대해 하기 전, 하는 동안, 그리고 한 후에 이야기할지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no’라고 할 수 있는지, 어떻게 ‘yes’ 라고 할 수 있는지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젊은 여성들에게 여성들의 편안함과 상대방의 편안함 둘 다가 중요하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우리는 젊은 여성들에게 젊은 여성들이 상대를 실제로 욕망할 권리가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그렇듯 만족스럽고, 안전하고, 그리고 물론, 오르가즘에 다다르는 섹스를 할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는 위험 뿐만 아니라 즐거움에 집중하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열성적인 동의’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망가진 성문화를 고치기 위해 동의의 많은 뉘앙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여기 재미있고 당신의 심기를 건드릴지도 모를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은 처음으로 정말, 실제로 원해서 했던 섹스를 기억하는가? 상대를 갈망했기 때문에 섹스를 했던 첫 경험 말이다. 난 기억한다. 난 곧 스무살이 될 참이었고, 이미 2년간 성적 경험을 해온 상태였다. 그는 파티에서 처음 만난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는데, 학교 수구 팀의 핫한 선수이자 #대학생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유 없이 셔츠를 벗고 망토를 두르고 있던 멍청이였다. 우리는 서로 너무 잘 맞았고 나는 빨리 그의 가슴을 핥고 싶었다. 그 전에는 그런 욕망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엄청난 느낌이었다.

그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 방금 만났으니 잘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너무나 원했기 때문에 그 섹스는 비싼 포르노에 나오는 종류의 섹스가 아니라 꽤 평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했던 섹스 중 가장 좋았던 경험 중 하나다. 그날 밤 난 깨달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현실에서 섹스가 그렇게 스릴있고 만족스럽고 기억에 남는 것인 줄 몰랐다. 이전에 했던 섹스가 끔찍하게 별로는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섹스를 하게 됐을 뿐이었다: 키스하다가 고조되어서, 또는 사귄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섹스를 해야만 할 타이밍인 것 같아서. 나는 그 파트너들을 원했지만 대체로 그들로부터 인정받기를, 그들의 애정 또는 관심을 원했다. 나는 그들을 갈망하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동화책만 읽으며 자라난 금욕적이며 말 잘 듣는 소녀가 아니었다는 거다. 당시에 나는 모교에서 (소프트 포르노 잡지로 알려지기도 한) 예술과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잡지의 총편집장이 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섹스에 대한 거리낌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섹스가 ‘특별해야 한다’ 거나 섹스하는 상대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섹스 한 이후에 수치스러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섹스를 ‘나쁘다’고 느끼게 한 것은 도덕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을, 그런 교류를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10대였을 때 결혼이나 진지한 관계를 가질 때까지 기다렸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내가 “재밌었어, 근데 난 이제 집에 갈게”라고 말하는 게 무례한 게 아니란 걸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 믿는다.

나는 그 멍청한 수구선수와의 경험 이후로 ‘나쁜 섹스’를 한 적이 별로 없다. 그 때의 섹스가 그 이후로 하고 싶은 섹스에 대한 기준을 상당히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내가 상대방을 그렇게 원할 때, “너의 피부 안에 기어들어가서 너의 땀을 마시고 싶을 정도”일 때만 섹스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난 모든 여성들이 그런 섹스를 하길 바란다–아니, 모든 사람들이 그러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결혼할 때까지 섹스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말자. 정말로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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